묘혈을 돌아보려는 그녀를 허준이 쓸어안았다.오랜만에 그 얼굴에 희망이 터질 듯이 넘치고 있었다.방안에 촛불이 마련되고 이북자리가 깔리는 소동 속에서 늙은 아비 어미가 들려준 경황은 이랬다.품안에 둔 아버지의 서간을 할인하면서 허준이 읍내의 불빛이 가장 밀집한 지점을 향해 감개를 담아 말했다.집안엔 아무도 없는 듯이 보였다. 적어도 눈이 내린 시각 후론 마당에 아무도 나다니지 않은 게 분명했다. 돌각담을 돌아온 낭자의 발자국만 희미한 호롱불이 비치는 방문 앞으로 이어져 있었다.방을 나온 허준이 그 아내에게 말했다.상화가 돌아간 뒤 어머니와 아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는 허준을 불러앉히고 다시 마주앉았다.의감이라카나 그것도 내가 적어논긴데 그만 지은 사람의 성명을 빠뜨린기라, 사람들한테 믿게 할라카모 책을 지은이 이름가지 대야 권위가 있어 믿는긴데 . 의감을 지은이가 누구라카던가?의원이라고 병자에게 목숨을 나누어주는 건 아니오.신분이야 어쨌든 사랑에 빠진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그칠 수 없는 정염이었을까. 아니면 장성하기까지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정이었을까.기다리면 뻔한 일 애걸복걸 너무 속태우지 마시오.반 년씩이나 소문을 쫓아다니다니. 그댄 그때서부터 꽤나 호사가였던게군.무언가 소란한 소리가 났으나 허준이 다시 장쇠에게 다가갔다. 잠시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모르던 장쇠가 싸쥔 입가에서 피를 발견하자 눈알이 퍼렇게 빛을 뿜었다.겨우 네 사람이오?나는 젊은 쪽에 속하던걸. 심지어 오십이 넘은 백발이 성성한 자들도 많았으니까.마치 사람의 몸속을 꿰뚫어보는 사람 같습니다.마주 외치려는 허준을 손씨가 울상이 되어 말리려 들었고 벌떡 일어난 늙은 아비에게 다희가 가로막으며 말했다.오늘 베풀어주신 은혜를 소녀가 죽는 날까지 잊지 않도록 성함을 일러주시고 가소서.아니 그런 생면부지의 이름보다 자기가 찾아갈 새 세상일 경상도 산음현이라는 고장의 이름이 하필 다희의 입에서 나옴으로써 허준은 그녀와의 만남이 어떤 운명적인 것으로 가슴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이곳 사또가 문서로서

오도곶에서 용천읍까지 25리.더 소상히라니요?난 싫다.그러나 병사에 있는 건 제자들 아니오.가만. 경상도 산음?허준 일가에게 씌워진 그 누명은 의원에도 퍼졌고 옳다구나 하고 소문을 더 찧고 까분 건 영달, 꺽새였고, 임오근 또한 허준에게 닥친 이 억울한 사건에 관해 위로의 말이 없었다. . 나니라.병을 낫게 하는 무슨 비방 같은 걸 적어오시나 부지요?한마디 제 소견을 꺼내도 되올지?착각이 아닐세. 먼저 한 말이 정답일세.왜 이러오?허준이 다시 마루 끝으로 다가가 섰다.유의태의 문하에 들어와 7년이 되었으며 출신이 부산포라 하여 성명 대신 부산포라 불리는 그 과묵한 병부잡이 부산포와 도지가 함께 관장하는 그 병상일지는 병사의 최고참 임오근과 쟁반잡이들 외 4년 짜리 장쇠들도 병을 알기 전에 약이름부터 외운다고 감히 함부로 못하게 하는 문건에 속했다.나으리의 차례오이다.유의태가 허준의 젖은 눈을 무시하고 다시 차가운 눈으로 바뀌고 있었다.돌아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준이 방안에서 들려왔던 낭자의 이름을 문득 뇌었다.우리도 제자가 될지 말진데 왜 엉뚱한 놈이 또 끼여들어?사행 다녀온 남응명인가 들어왔다는 얘기, 그 명나라 의원 이름이 뭐? 이시진(1518~1773)? 책이름은 본초강목?유의태가 호롱불 아래서 뒤적이고 있는 것은 물목장부 아닌 병부였다.그럼 궁녀란 말인가?이미 파혼한 처지요 그 낭자 또한 너의 모자에게 그런 언약을 한 바라면 하나도 겁낼 일은 아니로되 천리길 멀다 않고 찾아나선 그 사람에게도 당연히 할 말이 있으리라.했고 도지가 그 성깔 있는 얼굴로 맞받아,누워 있지 않으면 짚세기나 삼고 있는 그를 보며 그건 아마도 행여나 스승 유의태로부터의 사면의 소식을 기다리는 괴로운 침묵이려니 여기고 아내도 어머니도 애써 그의 심경을 건드리려 않았다.그러나 이 순간을 기다린 듯 영달이와 꺽새가 허준의 팔목을 잡아젖혔고 튕겨일어난 임오근이 함께 허준의 목덜미를 잡아채 방문 밖으로 끌었다.관? 허허허, 아니 형님.떠나려던 허준이 다시 정자 쪽을 보며 귀를